미학&예술학

반복과 훈련: 영감 없이도 창작할 수 있을까?

onde-sa 2025. 3. 17. 22:30

반복과 훈련: 영감 없이도 창작할 수 있을까?

 

1. 영감에 대한 신화와 현실: 창작은 꼭 영감에서 시작되어야 할까?

 

예술을 떠올릴 때 흔히 ‘영감’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순간적 깨달음, 무언가에 감동받아 단번에 붓을 들거나 악보를 그리는 장면은 대중매체나 예술가의 전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감 중심의 창작 이미지에는 한 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과연 창작은 언제나 영감에서 출발해야만 할까? 예술가가 무언가를 느끼지 못하는 날, 즉 ‘영감이 고갈된 날’에는 창작이 불가능한 것일까? 많은 예술가들은 오히려 이러한 인식에 반기를 든다. 작곡가 바흐는 일정한 시간에 반복해서 작곡을 했고, 화가 호크니는 매일 아침 동일한 장소에서 드로잉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들은 ‘영감 없이도’ 작품을 만들었고, 이 반복적 창작에서 오히려 더 깊은 예술적 세계를 구축해냈다. 결국, 창작은 특별한 영감 없이도 가능한 활동이며, ‘훈련된 감각’이 오히려 지속적인 창작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영감 중심의 신화를 넘어선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2. 반복적 훈련이 창작에 주는 구조적 안정감

 

창작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 예술가에게는 일정한 심리적, 신체적 리듬이 형성된다. 이러한 리듬은 창작을 더욱 안정적으로 이어가게 하는 기반이 되며, 결과적으로 예술적 감각의 정교화를 돕는다. 대표적인 예로 소설가 하루키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일정한 거리의 조깅을 실천하며 신체와 감각을 창작에 맞추어 조율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상적 반복은 뇌의 인지적 회로에 창작 습관을 심화시키며, 감정의 기복이나 외부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도 꾸준히 예술 행위를 지속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반복적 훈련은 창작의 다양한 실패와 시도를 경험하게 하며, 예술가로 하여금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구체화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사진작가 안셀 아담스는 자연 풍경을 수천 번 촬영하면서 빛과 구도의 변화를 익혔고, 이러한 훈련이 그의 작품 세계를 독보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반복적 창작은 단순히 기능의 연마를 넘어, 창작자 자신을 이해하고 예술 세계의 방향성을 탐색하는 시간이며, 이는 순간적 영감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예술을 이끌 수 있는 근력과도 같다.

 

3. 훈련된 창작에서 발생하는 ‘내적 영감’

 

반복과 훈련의 창작에서 흥미로운 점은, 외부 자극이나 즉각적인 감정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영감’의 발생이다. 이 영감은 단번에 나타나지 않으며, 오랜 훈련과 자기 성찰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다. 피카소는 하루에 수십 개의 스케치를 반복하며 손의 감각과 뇌의 연결을 강화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형태와 색감이 결국 명작으로 연결됐다. 그는 “영감은 작업 중에 찾아온다”는 말을 남기며, 훈련을 통해 ‘자기만의 창작 언어’를 발견하게 됨을 강조했다. 이처럼 훈련된 창작은 외부의 감동보다 훨씬 깊은, 예술가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감각과 사고를 자극하며, 이를 통해 더 진정성 있고 지속 가능한 창작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영감은 순간적이지 않으며, 반복적 경험과 감정의 누적 속에서 응축되어 나온다. 즉, ‘계획되지 않은 우연’이나 ‘몰입 속에서의 발견’이 훈련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이러한 발견이야말로 영감보다 강력한 창작의 원천일 수 있다.

 

4. 영감 없는 창작의 장기적 가치와 예술적 정체성

 

영감 없이도 꾸준히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은 예술가에게 자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제공한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감각의 자극이 넘치는 시대에는 순간적 영감에 의존할 경우 창작 방향성을 상실할 위험이 크다. 이에 따라 반복적 훈련을 통해 형성된 창작 루틴은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예술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매일 드로잉을 반복하며 사소한 빛의 변화, 일상의 풍경에서 스스로 영감을 길어냈고, 이를 통해 평범한 대상을 비범하게 만드는 시각을 얻었다. 반복적 창작을 지속하면 비록 즉각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예술가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히 인식하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또한 훈련된 창작은 예술가의 ‘감각적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으로, 감정적 기복이나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처럼 영감 없는 창작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예술가가 자신을 다듬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길이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이 있는 예술적 감각을 가능케 한다.

 

 

예술의 본질은 꾸준함 속에 있다

 

창작을 영감이라는 단발성 감정에 의존하는 행위로 한정하는 것은 예술의 본질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드는 접근이다. 반복과 훈련은 영감 없는 창작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창작의 본질적인 힘이 ‘계속해서 시도하는 의지’에 있음을 보여준다. 순간적 감정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꾸준히 축적된 감각과 감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술적 표현을 가능케 하는 근력이 된다. 또한 훈련은 예술가로 하여금 내면의 세계를 더 깊이 탐색하게 하며, 영감이 오지 않는 순간에도 손에서 창작을 멈추지 않게 한다. 결국 예술은, 영감이 아닌 지속적인 창작 행위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확장해가는 여정이며, 그 여정 속에서 발견되는 무의식적 감정과 경험이야말로 가장 진정성 있는 예술의 씨앗이다. 반복적 훈련과 창작은 예술을 삶의 일부로 체화하는 길이며, 이 꾸준함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